궁중문화축전 10주년 연출 박동우 감독
내달 26일 경복궁 근정전서
세종의 애민정신 주제로
가상의 훈민정음 반포식 열어
“상상할 때가 최고로 행복하죠”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궁중문화축전 개막제를 총연출하는 박동우 무대감독이 최근 남산한옥마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영기자]

둥둥 거대한 북소리가 4월 말 경복궁 근정전을 깨운다. 1446년으로 시계를 돌려, 세종대왕이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근정전엔 외국 사절과 백성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가운데 반포식을 축하하기 위한 북춤 공연이 화려하게 열린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궁중문화축전 개막제 윤곽이 나왔다. 훈민정음 반포식이라는 유쾌한 상상에 시민들이 직접 한복을 입고 참여할 수 있다. 다음달 26일 금요일 저녁에 열릴 개막제 총연출을 맡은 박동우 무대 감독(61·홍익대 교수)은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번 궁중문화축전 전체 주제는 세종의 애민정신”이라며 “개막전에서는 애민정신의 꽃이랄 수 있는 훈민정음이 반포됐던 1446년으로 시간 여행하듯 당시 분위기를 살렸다. 역사적으로 반포식은 없었지만 만약에 반포식을 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즐겁게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밝혔다.

훈민정음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언해본에서 알 수 있듯 백성을 아낀 세종의 마음이 담겨 있다. 사대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꾸었던 세종이었다. 박 감독은 “당시 반포식이 없었기에 초대된 외국사절도 없었고 백성들도 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이번엔 외국 대사들과 시민들이 전통 의상과 한복을 입고 반포식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글이 없었다면 K컬처가 지금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종횡무진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사극을 본 외국인들이 직접 한복을 입고 경복궁과 창덕궁을 관람하는 모습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공연으로 치면 개막제는 70분이 넘는데, 그중에 훈민정음 반포식은 10분, 나머지는 전후에 이루어지는 공연이 있습니다.” 배우 강신일이 세종대왕 역을 맡는 이번 무대의 특징은 시선의 전복에 있다. “과거 궁 마당에서 행사했을 때는 왕이 실내에 앉아서 볼 수 있도록 궁 마당 무대를 높여 만들었어요. 이번에는 왕이 주인공이 되고 밑에 있는 우리가 관객이 돼 행사를 지켜보는 거죠. 마지막엔 궁중의 북과 일반 백성들의 북춤이 만나는데 훈민정음이 북소리처럼 멀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세종의 정신을 담았어요.”

궁중문화축전은 경복궁 창덕궁을 포함한 서울 5대 궁과 종묘에서 펼쳐진다. 봄 공연은 4월 26일부터 5월 5일까지며, 가을엔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간 열린다. 애초 K궁을 알리기 위한 이 행사는 외국인들의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매년 관람객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고층빌딩 사이에 고즈넉한 궁이 많이 보존된 곳이 드물어요. 이 궁들은 하드웨어지요. 우리가 공연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이 궁을 살리는 거죠.”

박 감독은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 등 굵직굵직한 시대극의 무대를 주로 연출했다. 2018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때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송승환 총감독과 손발을 맞췄다. 현재는 뮤지컬업체 에이콤에서 준비하는 ‘몽유도원도’와 ‘칼의 노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창작 뮤지컬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그지만 이력은 독특하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전자 컴퓨터 사업부에서 일을 했지만 창의적인 일을 하겠다며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권성문 KTB투자증권 전 회장과 대학 동기다.

 

‘즐기면서 일하자’가 인생 신조다.

“전 일하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1997년 명성황후를 가지고 뉴욕 가서 공연했는데, 첫 공연에서 기립박수를 쳐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했어요. 관객 반응이 최고의 성취감이자 희열이죠.”

그는 “상상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무대연출가의 최고 덕목은 상상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강국은 세상에서 딱 세 곳이에요. 미국과 영국, 한국. 미국과 영국은 관객의 대부분이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내국인이죠. 관광객들이 더 많이 온다면 K공연이 더 발전할 수 있겠지요.”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뻔한 스토리인데 창작자가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보는 거죠. 이미 오페라 스토리와 노래를 다 알지만 마니아들은 가서 또 보잖아요. 이번에는 이걸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서 가는 거죠. 창작자는 오늘날의 관객에게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소통할까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거든요. 경제적 관점에서 예술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인간만이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가장 인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요.”

박동우

박동우 궁중문화축전 무대예술 교수 2024.3.21 [김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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